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토 32개국 중 23개국이 GDP 2% 국방비 지출 기준을 충족하며 냉전 종식 후 최대 군비 증강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는 유럽의 방산 역량 한계와 미국의 안보 공약 후퇴 가능성이 맞물린 심각한 전력 공백의 서막이다. 단순한 예산 증액을 넘어, 실질적 전투력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구조적 취약성이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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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뒤에 가려진 ‘전투 준비태세’의 함정
나토의 GDP 2% 국방비 지출 목표는 단순한 회계적 수치를 넘어, 동맹의 군사적 결의를 나타내는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국가들에게 안보 현실을 각성시켰고, 이는 전례 없는 국방 예산 증액으로 이어졌다.
2%라는 신화: 예산과 실제 전투력의 괴리
GDP의 2%라는 기준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전투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핵심은 증액된 예산이 어떻게 전력화(Force Generation)로 이어지는가에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3년 유럽의 군비 지출은 전년 대비 16% 급증했지만, 이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소진된 탄약과 장비 재고를 채우는 데 투입되었다. 신규 플랫폼 획득이나 미래전 대비 연구개발보다는 당장의 물자 소모(Consumption)를 메우는 수준에 머문다. 이는 병력의 숙련도 향상, 실전적 훈련 강화, 노후 장비의 현대화라는 근본적인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임시방편적 지출임을 의미한다. 결국, 명목상 예산은 늘었으나 실질적인 화력 투사 능력이나 지속적인 작전 수행 능력은 여전히 의문 부호로 남는다.
유럽 방위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

유럽의 방위 산업 기반은 냉전 종식 이후 급격히 위축되어 대규모 분쟁에 필요한 생산 역량을 상실했다. IIS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밀리터리 밸런스 2024’ 보고서는 유럽 주요국의 155mm 포탄 생산량이 러시아의 생산 속도를 따라잡기까지 최소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한다. 각국의 파편화된 조달 체계와 상이한 무기 규격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전차와 프랑스의 르클레르 전차는 핵심 부품과 탄약이 호환되지 않아 연합 작전 시 군수 지원에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한다. 이러한 비효율은 증액된 국방비가 온전히 전투력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내부 거래 비용으로 소모되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의 그림자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딜레마
나토의 방위비 증액 논의의 근저에는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전략적 중심을 옮기는 미국의 행보는 유럽에 안보 공백을 현실화시킨다.
‘미국 없는 나토’ 시나리오의 공포
유럽의 국방 역량은 여전히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전략 수송, 공중 급유, 정보·감시·정찰(ISR) 자산, 그리고 정밀 유도 무기(PGM) 재고 등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력 승수(Force Multiplier) 대부분을 미군이 제공한다. 미 국방부가 유럽 주둔 미군을 일부 감축하거나 순환 배치로 전환할 경우, 나토의 동부 전선 방어 계획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유럽 국가들이 증액한 국방비로 F-35와 같은 미국산 첨단 무기를 구매하고 있지만, 이를 독자적으로 운용하고 지원할 인프라와 후속 군수 지원 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곧 미국의 정치적 결정에 유럽의 안보가 종속되는 구조를 심화시킨다.
증액된 예산이 향하는 미래 전장
유럽 각국은 단순히 재래식 전력을 보강하는 것을 넘어, 미래 전장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를 시작했다. 이는 러시아의 재래식 위협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비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다영역 작전과 AI 기반 지휘통제체계
새로운 국방 예산의 상당 부분은 육·해·공·사이버·우주를 통합하는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 개념 구현에 집중된다. 이는 분산된 센서와 타격 자산을 인공지능(AI) 기반 지휘통제(C4I)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전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융합하고, 최적의 타격 결정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독일의 ‘디지털화 육군(D-LBO)’, 프랑스의 ‘SCORPION’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투자는 러시아의 대규모 병력과 물량에 맞서 결정적 우위(Decisive Edge)를 확보하려는 비대칭 대응 전략의 핵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입증된 정찰-타격 복합체계의 효율성을 나토 차원에서 제도화하려는 시도이다.
새로운 냉전: 세력 균형의 재편
나토의 방위비 증액은 유럽 대륙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차원의 군비 경쟁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억제하는 동시에, 유럽 안보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유럽의 재무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으며, 이는 러시아로 하여금 핵무기와 같은 비대칭 전력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결국 유럽은 과거 냉전 시대와 유사하지만 더욱 예측 불가능한 안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세력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전략적 도전에 직면했다.
자주 묻는 질문
GDP 2%를 달성하면 즉시 러시아를 압도할 수 있는가?
아니다. 예산 증액이 실제 전투력으로 전환되기까지는 장비 도입, 병력 훈련, 군수 체계 구축 등 최소 5~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숙련된 운용 인력과 정비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핵심 과제이다.
트럼프 재집권 시 나토의 방위비 증액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유럽 국가들의 자체 방위력 강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논의를 심화시키고, 미국산 무기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방위비 지출(GDP 대비 약 2.7%)은 나토와 비교 시 어떤 수준인가?
한국은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이 나토 최상위권 국가들과 비슷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상시적인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고강도 대비태세 유지 비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전력 현대화와 미래전 대비에 투자하는 유럽 국가들과는 지출의 성격이 다르다.
증액된 방위비가 실제 전력으로 전환되는 데 가장 큰 병목 현상은 무엇인가?
가장 큰 병목은 방위 산업 생산 능력(Defense Industrial Base Capacity)이다. 수십 년간 평화에 익숙해져 축소된 생산 라인을 단기간에 복원하고 확장하는 것은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요구된다. 특히 특수강, 반도체, 화약 등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가 시급한 문제이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릴 것인가, 아니면 자체 방산을 키울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F-35, HIMARS 등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미국산 무기 구매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전투기(FCAS), 주력전차(MGCS) 등 유럽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방산 자립도를 높이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