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0년간 30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의 전면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세계 1위 조선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대형 3사의 과당경쟁이 오히려 핵심 전투체계의 기술 유출과 함정 가동률 저하라는 안보 공백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치명적 리스크가 수면 위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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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O 시장 개방, 양날의 검이 된 효율성
정부는 국방예산 효율화와 경쟁을 통한 기술력 증진을 명분으로 함정 MRO 시장 개방을 추진한다. 이는 단기적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함정의 특수성을 간과한 접근은 전투력 유지에 심각한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
건조와 정비, 분리된 패러다임의 함정
신규 함정을 건조하는 역량과 운용 중인 함정의 성능을 유지·보수하는 MRO 역량은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함정 MRO의 핵심은 선체 수리가 아닌, 이지스(Aegis) 전투체계나 소나(Sonar) 등 복잡하게 얽힌 전자·무장 시스템의 통합성과 무결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 건조 경험이 없는 업체가 최저가 입찰을 통해 MRO 사업을 수주할 경우, 블랙박스로 남겨진 핵심 체계의 정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결함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해당 함정의 전투 준비태세(Combat Readiness) 저하로 이어지는 안보 문제이다. 미 해군 역시 함정 건조사와 MRO 주체를 엄격히 연동하여 ‘총수명주기관리(Total Life Cycle Systems Management)’ 개념을 적용한다.
과당경쟁이 부를 ‘기술 종속’의 역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으로 재편된 국내 조선업계의 경쟁은 MRO 시장에서 극에 달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들이 수주를 위해 해외 전문 MRO 기업이나 부품사와 무분별하게 협력할 가능성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잠수함 소음·진동 제어 기술이나 국산 전투체계의 소스코드 등 핵심 방산 기술이 유출될 위험이 상존한다. 단기 실적을 위한 저가 수주 경쟁이 결국 국내 방위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해외 기술에 대한 종속을 심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데이터로 본 국내 MRO 역량의 현주소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능력에도 불구하고, MRO 분야는 여전히 체계적인 성장 기반이 부족하다. 이는 함정의 실질적 전투력을 좌우하는 운용유지 단계에서의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
숫자로 드러난 전력 유지의 민낯
IISS의 ‘밀리터리 밸런스 2023’에 따르면 대한민국 해군은 170여 척의 함정을 운용하며 동북아에서 높은 수준의 작전 템포를 유지한다. 문제는 함정 수명 연장과 성능 개량이 중요해지면서 MRO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분석에 의하면, 현대 해군력 유지비용에서 MRO를 포함한 운용유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총수명주기비용(LCC)의 60~70%에 육박한다. 국내 MRO 시장의 비체계적인 경쟁 구조는 이러한 비용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며, 결국 한정된 국방예산 내에서 함정 가동률 하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지정학적 파급 효과와 세력 균형의 재편
해군 함정 MRO 정책의 실패는 단순히 개별 함정의 성능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동북아 전체의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변수가 된다.
동북아 해양 패권과 ‘작전 공백’ 시나리오
체계적이지 못한 MRO로 인해 이지스 구축함이나 3,000톤급 잠수함과 같은 핵심 전략자산의 동시 가동률이 70% 이하로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한 즉각적인 추적·감시 능력에 공백을 발생시킨다. 중국 해군의 서해 진출에 대한 우리 해역의 방어선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미 연합 방위태세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한민국 국방부의 해군력 신뢰도 하락은 역내 군사적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결국 MRO 시장 개방 문제는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닌,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고도의 군사 전략적 판단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자주 묻는 질문
MRO 시장 개방이 함정 가동률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무엇인가?
검증되지 않은 업체의 저품질 정비는 함정의 고장률을 높이고 재입고 기간을 늘려 실질적인 작전 투입 가능 일수를 감소시킨다. 이는 함대 전체의 전투 준비태세를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최저가 입찰 방식이 전투체계 성능에 구체적으로 어떤 위협을 초래하는가?
비용 절감을 위해 비규격 부품을 사용하거나 필수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및 연동 시험을 생략할 수 있다. 이는 전투 중 레이더 오작동, 미사일 발사 불능 등 치명적인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다.
해외 MRO 전문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과 그 파급력은?
국내 대형 조선사와의 컨소시엄 형태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선진 기술 이전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MRO 시장 잠식과 핵심 정비 데이터의 해외 유출로 이어질 것이다.
‘총수명주기관리(TLCSM)’ 관점에서 현 MRO 정책의 맹점은?
설계·건조 단계부터 폐기까지 전 수명주기를 통합 관리하는 TLCSM 개념이 부재한 상태에서 MRO만 분리해 경쟁시키는 것은 근시안적 접근이다. 건조사가 축적한 설계 데이터와 노하우가 정비 과정에 단절되어 비효율과 리스크를 키운다.
건조사가 아닌 정비 전문 중소기업 육성 방안은 현실성이 있는가?
현실성은 있으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정 분야(항법장비, 통신체계 등)에 특화된 강소기업을 육성하되, 전투체계 통합과 같은 최상위 단계의 MRO는 건조사가 책임지는 이원화된 생태계 구축이 바람직한 대안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