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2026 회계연도 국방 예산안은 단순한 숫자 나열이 아니다. 9,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액수는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잠재적 무력 충돌을 기정사실로 간주한 냉혹한 전략적 선언이다. 이는 지난 20년간의 대테러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거대 국가 간의 전면전을 상정한 전력 구조 개편의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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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견제, 노골화된 ‘통합억제’의 실체
이번 예산안의 핵심은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한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개념의 구체화에 있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은 함정과 전투기를 구매하는 차원을 넘어, 전쟁 수행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전력 투사 방식의 근본적 전환: ‘기동’에서 ‘분산’으로
냉전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항공모함 강습단 중심의 집중화된 전력 투사 방식은 중국의 ‘항모 킬러’ DF-21D, DF-26 미사일 앞에서 심각한 취약점을 드러냈다. 2026년 예산안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분산된 해상 작전(Distributed Maritime Operations, DMO) 교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거대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무인수상함(USV), 무인잠수정(UUV) 등 저비용 자율 시스템을 대량으로 배치해 적의 탐지 및 타격 결심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IISS의 ‘밀리터리 밸런스 2024’는 이미 중국 해군의 양적 팽창이 미 해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하며, 이러한 질적 변화의 시급성을 뒷받침한다. ‘리플리케이터 이니셔티브’에 배정된 예산은 이러한 비대칭적 대응 전략의 구체적 실행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주 및 사이버 전장의 패권 경쟁

미래 전장은 지상, 해상, 공중을 넘어 우주와 사이버 공간에서 시작된다. 미 우주군과 사이버사령부에 대한 예산 증액은 이러한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특히 저궤도 위성을 빽빽하게 배치하는 확산형 전투원 우주 아키텍처(PWSA) 구축은 중국의 위성 요격 무기와 지상 기반 재머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이다. 이는 미사일 방어 체계의 조기 경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동시에, C5ISR(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사이버, 정보, 감시, 정찰) 네트워크의 생존성을 보장한다. 사이버 영역에서는 방어적 태세를 넘어 적의 네트워크에 사전 침투해 위협을 무력화하는 ‘헌트 포워드(Hunt Forward)’ 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데 투자가 집중된다.
첨단 무기 체계 개발·획득의 우선순위 재편
2026년 예산안은 레거시 플랫폼의 도태를 가속화하고 차세대 ‘게임 체인저’ 기술에 자원을 집중하는 과감한 선택을 담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전력 공백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미래 전장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펜타곤의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하늘의 지배자 교체: NGAD와 B-21 레이더
F-22 랩터의 신화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책정된 차세대 공중 지배(NGAD) 프로그램은 단순히 새로운 전투기를 만드는 사업이 아니다. 유인 전투기를 중심으로 다수의 무인 협동 전투기(CCA)가 하나의 팀을 이루는 ‘시스템의 시스템’ 개념을 구현한다. 이는 중국 J-20 스텔스 전투기의 위협에 대응하고, 복잡한 전장 환경에서 압도적인 정보 우위와 화력 우세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의 저율초도생산(LRIP) 예산 증액 역시 중국 본토의 A2/AD 방어망을 뚫고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전략적 타격 능력의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음을 시사한다.
극초음속 무기 경쟁의 현주소와 과제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비해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예산안은 공중발사 신속대응무기(ARRW)의 실패를 교훈 삼아 해군과 육군의 극초음속 프로젝트에 대한 선택과 집중에 나서는 모습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분석처럼, 강대국 간의 군비 경쟁은 이제 R&D 지출 규모에서 판가름 난다. 펜타곤은 극초음속 무기 개발과 동시에 이를 방어하기 위한 활공 단계 요격기(GPI) 개발에도 막대한 투자를 병행하며, 창과 방패의 경쟁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전략적 안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예산안이 시사하는 인도-태평양 세력 균형의 미래
미 국방부의 2026년 예산안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명확해짐에 따라, 한국, 일본, 호주 등 역내 동맹국들은 더 큰 역할과 책임을 요구받게 된다.
특히 무인 체계,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 통합 방공망 분야에서의 상호운용성 강화 압박은 거세질 전망이다. 이는 동맹국들의 국방 예산 배분과 무기 획득 전략에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2026년 미 국방 예산안은 단순한 재정 계획을 넘어, 중국의 부상에 맞서 동맹 네트워크를 재편하고 기술적 우위를 통해 새로운 힘의 균형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거대한 지정학적 로드맵이다.
자주 묻는 질문
2026년 예산안에서 육군 전력 감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대규모 지상전 대비 태세에서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보병 및 기갑 부대 규모를 줄이는 대신, 태평양 전구에 필수적인 장거리 정밀 타격 부대, 미사일 방어 부대, 사이버·전자전 부대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자원을 재배치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리플리케이터 이니셔티브’에 대한 투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가?
수천 개의 저비용 자율·무인 시스템으로 적을 압도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의 값비싼 이지스함이나 항공모함을 소모성 드론으로 공격하게 만들어, 비용 강요 전략(Cost-imposing strategy)을 통해 적의 전투 지속 능력을 고갈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이번 예산안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미칠 영향은?
미국은 자국의 최첨단 기술 투자와 인도-태평양 전력 증강을 명분으로 동맹국의 기여 확대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미 국방부의 전략 문서들이 강조하는 ‘통합억제’는 결국 동맹의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하기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F-35 전투기 추가 도입 물량이 예상보다 줄어든 이유는?
차세대 공중 지배(NGAD) 프로그램으로 자원을 이전하기 위한 전략적 재분배이다. 5세대 플랫폼의 양적 확대보다는 미래 위협에 대응할 6세대 기술 우위 확보를 우선시한 결정으로, 단기적 위험을 감수하고 장기적 우위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의회의 주요 쟁점은 무엇이 될 것인가?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측과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는 국방 매파 간의 충돌이 예상된다. 레거시 플랫폼 퇴역의 타당성, 그리고 실패 위험이 큰 차세대 기술 R&D 예산의 효율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