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포병 전력의 핵심인 K9 자주포의 창정비 주기가 야전 운용률에 심각한 변동성을 야기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1만 문 이상 보유한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는 ‘결정적 시간’의 화력 공백으로 직결되는 안보적 위기이다. 가동률 저하는 대화력전 교리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결함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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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공백의 현실화: 창정비 주기의 역설
최상의 전투 성능 유지를 위해 설계된 창정비(Depot Maintenance) 주기가 역설적으로 상시 전투 준비 태세에 공백을 초래하는 현실이 포착된다. 창정비는 단순한 야전 정비가 아닌, 공장급 시설에서 기동, 사격, 통신 등 모든 계통을 완전히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수개월이 소요되며, 해당 기간 동안 포병 부대는 명백한 전력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동시 다발적으로 창정비에 들어가는 자주포의 수량이 야전 가용성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 밤 즉시 싸울 수 있는(Ready-To-Fight-Tonight)’ 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한반도 작전 환경에서 매우 심각한 취약점이다.
K9 자주포 운용률 변동성의 전술적 의미
K9 자주포는 북한의 장사정포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핵심적인 대화력전(Counter-fire) 자산이다. 그러나 정비 주기에 따른 가동률의 주기적 하락은 이 핵심 교리의 실행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킨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밀리터리 밸런스’ 보고서가 대한민국의 양적 포병 전력을 높이 평가함에도, 실제 동원 가능한 질적 전력은 수치와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100% 가동률과 정비로 인해 발생하는 15~20%의 전력 공백 사이의 격차는 전술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용 포문 수의 감소는 신속한 화력 집중을 생명으로 하는 ‘TOT 사격(Time on Target)’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더 적은 수의 자주포로 동일한 제압 효과를 얻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이는 적에게 재장전 및 진지 변환의 기회를 제공하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창정비 문제는 단순히 몇몇 장비의 수리 문제가 아니라, 포병 운용 교리 자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전략적 변수인 것이다.
예산과 가동률의 딜레마

안정적인 가동률 확보는 결국 국방 예산, 특히 수리부속운영유지(MRO) 예산의 적절성과 직결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데이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방비 지출은 세계 10위권이지만, 신규 무기체계 획득 비용에 비해 기존 자산의 유지보수 예산은 항상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최신예 장비를 도입하고도 그 성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속 빈 강군’을 만들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다.
K9 자주포 한 문의 창정비 비용은 수억 원에 달하며, 수백 문에 달하는 전체 전력의 주기를 관리하는 것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다. 예산 제약으로 정비 주기가 지연되거나 필요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가동률 저하는 더욱 심화된다. 이는 단순히 예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획득과 유지보수 간의 균형 잡힌 재원 배분이라는 국방 기획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북한의 비대칭 위협과 ‘결정적 시간’
북한의 군사 전략은 개전 초기, 수도권을 사정권에 둔 장사정포를 통해 압도적인 화력 투사를 감행하여 심리적·물리적 마비를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군의 대응은 적의 포격 원점을 신속히 탐지하고 K9 자주포로 즉각 무력화시키는 능력에 달려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결정적 시간(Decisive Time)’이다.
적의 포탄이 낙하한 후 아군이 대응 사격을 개시하기까지의 시간을 얼마나 단축하는지가 대화력전의 성패를 가른다. 창정비로 인한 K9 자주포의 가용성 저하는 이 결정적 시간을 늘리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화력전 교리의 치명적 약점
대한민국 육군의 대화력전 수행체계는 대포병탐지레이더(AN/TPQ-37)가 적 포탄의 궤적을 역산해 발사 원점을 식별하면, 자동화된 지휘통제체계(BTCS)가 가장 가까운 포병 부대에 표적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책임지는 것이 바로 K9 자주포의 초기 화력 투사(Initial Firepower Projection) 능력이다. 18문으로 구성된 표준 포대가 일제히 사격할 때의 파괴력과, 3~4문이 정비로 빠진 상태에서의 화력은 질적으로 다르다.
가용 포문 수의 감소는 단위 시간당 목표 지역에 투사할 수 있는 화력의 밀도를 낮춘다. 이는 적 장사정포 진지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고 일부만 제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살아남은 적 포대는 즉시 위치를 변경하거나 2차 공격을 감행할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 더 큰 피해로 돌아온다.
세력 균형의 재편: 유지보수가 전략을 결정한다
한 국가의 실질적인 군사력은 단순히 보유한 무기의 숫자가 아니라, 이를 지속적으로 운용하고 전투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 즉 군수지원 및 정비(Sustainment) 능력에서 판가름 난다.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자주포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필요할 때 사격할 수 없다면 전략적 가치는 급감한다. 현재 국방부가 직면한 K9 자주포의 창정비 주기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과제를 넘어섰다.
이 문제는 한반도의 군사적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변수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더불어 재래식 전력의 핵심인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억제력 신뢰도는 K9 자주포의 가동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예지정비(Predictive Maintenance) 시스템 도입, 핵심 부품 모듈화 등 정비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 혁신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병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의 대북 억제 전략에는 언제나 불안정한 균열이 존재할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Q1: 창정비 주기는 보통 몇 년이며, 왜 이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는가?
K9 자주포의 창정비 주기는 통상 8~10년 또는 일정 기동 시간 도달 시 이뤄진다. 이 과정은 엔진, 변속기 등 파워팩을 포함한 모든 부품을 분해하여 마모되거나 손상된 부품을 교체하고 성능을 신품 수준으로 복원하는 ‘오버홀’ 작업이기에 수개월의 시간이 필연적으로 소요된다.
Q2: K9 자주포의 해외 수출 실적은 좋은데, 왜 국내 운용에 문제가 생기나?
수출 성공과 국내 운용 문제는 별개의 차원이다. 핵심은 K9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수백 문에 달하는 대규모 전력을 상시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로 유지해야 하는 우리 군의 특수한 작전 환경과 이를 뒷받침할 MRO 예산 및 군수지원 시스템의 효율성 문제이다.
Q3: 창정비 기간 중 해당 부대의 전투력은 어떻게 보강되는가?
원칙적으로는 군단이나 군수사령부 예하의 예비 장비를 대여하거나 인접 부대의 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부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미봉책일 뿐이며, 전면전과 같은 총력전 상황에서는 즉각적인 전력 공백을 완벽히 메울 수 없다.
Q4: 미군의 자주포 운용 및 정비 교리는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미군은 방대한 군수지원사령부와 민간 계약업체(LOGCAP)를 활용한 전방위적 군수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한, 핵심 부품의 모듈화를 통해 야전에서도 신속한 교체가 가능한 시스템을 지향하며, 이는 정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지만 막대한 운용 비용을 수반한다.
Q5: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기습적인 대규모 포격 도발 시, 초기 대응에 필요한 충분한 화력을 즉각적으로 투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대화력전 실패로 이어져 수도권에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유발하고, 전쟁의 초기 주도권을 상실하는 결정적 원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