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파괴된 전차는 양측을 합쳐 1만 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21세기 전장에서 주력전차(MBT)의 생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비용 고효율의 대전차 미사일과 FPV 드론의 등장은 냉전 시대부터 이어져 온 기갑 중심의 전술 교리 자체를 뒤흔드는 지정학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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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패러다임의 급변: ‘지상의 왕자’는 몰락하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 주력전차(MBT)의 무덤이 되었다. 개전 이래 파괴되거나 노획된 기갑 장비의 수는 냉전 종식 이후 어떤 국지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이며, 이는 기갑부대를 운용하는 모든 국가에 심각한 경고를 보낸다.
이 현상은 단순한 장비 손실을 넘어, 전차를 지상전의 핵심으로 삼았던 전술 교리의 파산을 의미한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최첨단 전차가 수백 달러짜리 드론에 무력화되는 비용 교환비의 붕괴는 전력 증강의 방향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게 만든다.
탑어택(Top-Attack)과 드론: 비대칭 위협의 현실화
현대 전차의 취약성은 장갑이 가장 얇은 상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재블린(Javelin), NLAW 같은 대전차 미사일은 발사 후 급상승하여 전차의 상부를 타격하는 탑어택(Top-Attack)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여기에 더해, 값싼 상용 부품으로 제작된 FPV 드론이 탄두를 장착하고 정밀 유도 폭탄처럼 운용되면서 전차는 전장의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는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비대칭 위협의 확산은 전차의 전통적인 역할인 ‘돌파’를 극도로 위험한 임무로 만들었다. 이제 기갑부대는 적진을 향한 과감한 기동 대신, 광범위한 정찰과 방어망 속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수세적인 입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기갑 운용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실존적 위협이다.
생존성의 딜레마: 능동방호체계(APS)의 한계

날아오는 위협을 요격하는 능동방호체계(APS)는 이러한 위협에 대한 핵심 대응책으로 주목받아왔다. 이스라엘의 트로피(Trophy) 시스템과 같은 하드킬(Hard-kill) 방식의 APS는 실전에서 그 효과를 입증하였다. 하지만 APS 역시 만능은 아니다. 드론 여러 대를 동원한 동시 다발적 공격, 즉 ‘벌떼 공격(Saturation Attack)’에 요격탄이 소진되면 시스템은 무력화된다. IISS의 ‘밀리터리 밸런스(The Military Balance)’ 보고서는 높은 비용과 체계 통합 문제로 인해 최상위급 APS를 모든 전차에 보급한 국가는 극소수임을 지적한다. 결국 적은 비용으로 APS의 방어 능력을 소모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소모전이 펼쳐지면서, 전차의 생존성은 다시금 기술과 전술의 끊임없는 순환 경쟁 속에 놓이게 되었다.
글로벌 지상전력 재편: 차세대 전차의 진화 방향
전차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상황 속에서, 세계 군사 강국들은 기갑 전력의 미래를 고심하고 있다. 단순히 장갑을 두껍게 하는 방식의 진화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차세대 전차는 생존성과 공격력을 네트워크와 무인체계를 통해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전차 개발 철학은 플랫폼 자체의 성능을 넘어, 전장 전체를 조망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의 시스템(System of Systems)’ 개념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는 전차가 단순한 전투원이 아닌, 지상전의 지휘 통제 노드(Node)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네트워크 중심전(NCW)과 유무인 복합전투
미래 전차는 네트워크 중심전(NCW)의 핵심 자산으로 진화한다. 이는 전차가 통제하는 정찰 드론과 로봇 전투차량이 먼저 위협을 탐지하고 교전하는 유무인 복합전투(MUM-T) 교리를 통해 구현된다. 전차는 더 이상 자신의 센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무인 자산이 보내오는 정보를 융합하여 전장 상황을 입체적으로 인식하고 안전한 거리에서 위협을 제거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데이터에 따르면, 주요 군사 강국들의 국방 R&D 예산 중 무인 체계 및 AI 통합 기술 분야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고립된 중장갑 플랫폼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분산된 네트워크 자산을 통해 생존성과 치명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