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군비 지출은 2조 4천억 달러를 돌파하며 냉전 종식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첨단 무기 체계의 가동률은 오히려 하락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전쟁의 승패를 가를 ‘지속 능력(Sustainability)’의 균열을 의미하며, 방산 투자의 무게추가 체계 종합 업체에서 MRO(정비·수리·분해조립) 전문 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치명적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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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패러다임, ‘획득’에서 ‘유지’로의 이동
현대 무기 체계의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5세대 전투기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수십만 개에 달하며, 이는 과거 3~4세대 전투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비 부담을 야기한다.
전쟁 억제력은 단순히 카탈로그 상의 무기 수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교전 상황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전력 가용성(Operational Availability)이 핵심이며, 이는 전적으로 MRO 역량에 달려있다.
‘창’을 만드는 자 vs ‘창’을 벼리는 자
체계 종합 업체와 MRO 전문 기업의 본질은 ‘창조’와 ‘유지’라는 근본적 차이에서 출발한다. 록히드마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같은 체계 종합 업체는 막대한 R&D 투자를 통해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소위 ‘창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의 성공은 대규모 획득 사업 수주에 달려 있으며, 이는 지정학적 변수와 정부 예산에 극도로 민감한 고위험-고수익 구조를 가진다. 반면, MRO 전문 기업은 이미 배치된 무기 체계의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최상의 전투 성능을 유지하는 ‘창을 벼리는’ 임무를 맡는다. 이들의 비즈니스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군수 지원 계약에 기반하며, 전쟁의 위협이 고조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는 특성을 보인다. IISS의 밀리터리 밸런스 보고서는 선진국 군대조차 첨단 자산의 운용유지비가 획득 비용을 초과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MRO의 전략적 중요성을 방증한다.
수익 구조와 리스크의 지정학적 함수

두 유형의 기업은 재무적 안정성과 성장 동력 측면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투자자는 각 기업이 처한 지정학적 환경과 국방 예산의 구조적 흐름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단기적인 대규모 수주 실적에 현혹되기보다, 장기적인 전장 환경 변화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체계 종합 업체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
체계 종합 업체의 주가는 대규모 해외 수주 계약과 같은 이벤트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한다. 폴란드 K2 전차 수출 계약과 같은 성공 사례는 막대한 수익과 국가적 위상 제고를 가져오지만, 그 이면에는 수조 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사업이 정치적 이유로 좌초될 수 있는 치명적 리스크가 상존한다. 특히 수출 대상국의 정권 교체나 외교 관계 변화는 계약 파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경쟁국과의 치열한 수주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과도한 기술 이전이나 가격 인하는 장기적인 수익성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 소수의 대어(大魚)를 노리는 낚시와 같아서, 한번 성공하면 막대하지만 실패의 공백 또한 길고 깊다.
MRO 기업의 ‘저위험, 장기 현금흐름’ 모델
MRO 기업의 수익 모델은 본질적으로 ‘구독 경제’와 유사하다. 한번 배치된 무기 체계는 최소 20~30년간 운용되며, 이 기간 동안 정비, 부품 교체, 성능 개량 수요는 꾸준히 발생한다. 이러한 계약은 대부분 정부와 장기적으로 체결되므로, 국제 정세 변화나 경기 변동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안정적인 현금흐름(Cash Flow)을 창출한다. 특히 대한민국 국방부가 추진하는 ‘성과기반군수지원(PBL)’ 계약은 MRO 기업의 역할을 단순 정비에서 ‘장비 가동률 보장’으로 격상시켜, 기업의 책임과 수익을 동시에 증대시키는 선진화된 방식이다. 이는 거대한 댐에서 꾸준히 흘러나오는 물과 같아,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마르지 않는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이다.
미래 전장 환경이 요구하는 핵심 역량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의 양상을 재정의했다. 소모전 양상으로 치닫는 장기전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최첨단 신무기가 아니라, 기존 무기를 얼마나 신속하게 수리하고 개량하여 재투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이는 향후 국방력 건설의 우선순위가 신규 플랫폼 ‘획득’에서 기존 전력의 ‘유지’ 및 ‘성능 개량’으로 전환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소모전과 비대칭 위협 속 MRO의 부상
고강도 전면전 상황에서는 무기 체계의 손실률이 평시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파괴된 전차와 전투기를 대체할 신규 장비를 생산 라인에서 공급받기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소요된다. 이 공백을 메우는 유일한 해법이 바로 야전 정비와 창정비 역량을 극대화하는 MRO이다. 전선에서 후송된 장비를 신속히 수리하고, 노후 장비에 새로운 센서와 무장을 장착해 전장으로 돌려보내는 능력은 화력 투사 사이클을 단축시키는 결정적 요소이다. 드론과 자폭 무인기 같은 저비용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기존 방공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신속한 정비 지원은 필수적이며, 이는 체계 종합 업체의 생산 라인이 아닌 MRO 전문 기업의 영역이다. 결국 미래 전장은 누가 더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닌, 누가 더 빨리 고쳐 쓰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세력 균형의 저울추, MRO 역량에 달리다
한 국가의 실질적 군사력은 보유한 무기 체계의 양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안에 특정 지역에 투사할 수 있는 전투력의 총합으로 평가된다. 아무리 강력한 스텔스 전투기를 100대 보유했더라도, 부품 수급난과 정비 인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50%에 그친다면 이는 서류상의 전력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한 지역의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은 눈에 보이는 체계 종합 업체의 생산품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MRO 인프라의 강건함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MRO 역량의 우위는 평시에는 억제력으로, 전시에는 전쟁 지속 능력으로 발현되는 비대칭적 전략 자산이다. 향후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구도에서 한국의 방위 산업이 진정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완제품 수출의 화려함 이면에 있는 MRO 생태계 육성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자주 묻는 질문
Q1. 신규 무기 도입이 MRO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신규 무기 도입은 단기적으로 기존 무기 체계의 정비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MRO 시장을 창출하며, 특히 기술 집약적인 신규 플랫폼의 정비는 더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다.
Q2. AI와 3D 프린팅 기술이 MRO 시장을 어떻게 바꾸는가?
AI는 고장 예측 분석을 통해 선제적 정비를 가능하게 하여 가동률을 극대화한다. 3D 프린팅 기술은 단종되거나 수급이 어려운 부품을 즉시 생산하여 정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게임 체인저로 작용한다.
Q3. 체계 종합 업체가 MRO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것의 장단점은?
체계 종합 업체의 MRO 직접 수행은 설계 지식과 기술 연속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전문 MRO 기업에 비해 비용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으며, 신규 플랫폼 개발이라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지 못하는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
Q4. 전시 상황에서 MRO 기업의 주가 변동성은 체계 종합 업체와 어떻게 다른가?
전시에는 무기 소모율이 급증하므로 MRO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주가에 긍정적일 수 있다. 반면 체계 종합 업체는 생산 시설이 적의 직접 타격 목표가 될 수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훨씬 크다.
Q5. FMS(대외군사판매) 계약에서 MRO 관련 조항의 전략적 의미는?
FMS 계약 시 후속 군수 지원 및 MRO 패키지는 무기 판매 자체보다 더 큰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이는 구매국의 해당 무기 체계에 대한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장기적인 군사 협력의 발판을 마련하는 외교적 지렛대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