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군비 지출이 SIPRI 집계 기준 2조 4,430억 달러를 돌파하며 냉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각국이 F-35, K2 전차 등 첨단 무기체계 도입에 열을 올리는 사이, 이들 자산의 전투 지속성을 담보하는 MRO(유지·보수·정비) 인프라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다. 이는 전시 작전 가능일수를 0으로 수렴시키는 치명적 안보 공백을 야기하는 전략적 실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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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전력 증강의 그늘, ‘페이퍼 타이거’의 함정
최첨단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체계 종합 업체의 성과는 가시적이며 즉각적인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실전에서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보유 대수가 아닌 가동률(Operational Availability)과 임무 수행률(Mission Capable Rate)이다. 이 지표를 책임지는 MRO 역량의 부재는 막대한 예산으로 도입한 첨단 무기를 전시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속 빈 강정’을 초래한다.
획득 중심주의가 낳은 전략적 공백
현재 대한민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의 국방 예산 편성은 신규 무기 ‘획득’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 KF-21, 현무-V 등 체계 종합 업체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국가적 자부심을 높이지만, 이들 무기체계의 수명주기비용(Life Cycle Cost) 중 60~70%가 운용유지 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외면된다. 미 국방부 분석에 따르면, 획득비용 대비 운용유지비는 플랫폼에 따라 2~3배에 달하며, 이 비용의 효율적 관리가 전투력 유지의 핵심이다. 성능 기반 군수지원(PBL, Performance-Based Logistics) 계약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MRO 기업의 장기적 투자 가치는 폭발적 수주 계약을 따내는 체계 종합 업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전쟁의 교훈: 물량이 아닌 지속성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의 승패가 화력 투사의 지속성에 있음을 명백히 증명했다. 러시아군이 초기에 고전한 핵심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야전 정비 능력과 부품 공급망 붕괴라는 병참의 실패였다. IIS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밀리터리 밸런스 보고서는 단순히 무기 수량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각국의 운용유지 능력을 잠재적 전투력의 주요 변수로 분석한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는 단기적 계약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체계 종합 업체보다, 전쟁 억제력의 근간을 이루는 MRO 전문 기업의 꾸준한 현금 흐름과 성장 잠재력이 더 매력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이지 않는 동맥, MRO가 곧 국가안보다
MRO 산업은 단순한 ‘수리’를 넘어선다. 노후 장비의 성능 개량, 핵심 부품의 국산화, 데이터 기반의 예방 정비를 통해 군의 전투력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핵심 동맥이다. 이 동맥이 막히면 국방 전체가 괴사할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부품 주권’
글로벌 공급망이 무기화되는 시대, MRO의 해외 의존은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대만 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F-35와 같은 미국산 무기체계의 핵심 부품 수급은 즉시 마비될 수 있다. 국내에 해당 부품을 정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MRO 역량이 없다면, 우리의 최첨단 전투기들은 이륙조차 할 수 없는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다. ‘부품 주권’의 확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며, 이는 곧 내수 시장에 기반을 둔 MRO 전문 기업의 전략적 가치가 급등함을 의미한다. 투자자에게 이는 단순한 방산주 투자가 아닌, 국가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헤지(Hedge)하는 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축이다.
미래 전장 환경과 세력 균형의 재편
인공지능(AI) 기반 자율 무기체계, 극초음속 미사일 등 미래 전장의 게임 체인저들은 더욱 정교하고 복잡한 유지보수를 요구한다. 이는 MRO 시장의 질적, 양적 팽창을 예고하며, 이 분야의 기술력을 선점한 기업이 미래 방산 시장의 패권을 쥘 것임을 명확히 한다. 향후 지역의 세력 균형은 단순히 어떤 국가가 더 강력한 무기를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국가가 보유한 무기체계를 가장 높은 가동률로, 가장 오랫동안 운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재편될 전망이다. 따라서 자본 시장의 무게중심 역시 화려한 ‘창’을 만드는 체계 종합 업체에서, 그 창을 항상 날카롭게 유지하는 ‘숫돌’ 역할의 MRO 전문 기업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할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MRO 기업의 주가는 왜 체계 종합 업체보다 변동성이 낮은가?
MRO 기업의 매출은 장기 운용유지 계약에 기반하여 꾸준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신규 수주에 따라 실적이 급등락하는 체계 종합 업체와 달리,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여 경기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
체계 종합 업체가 MRO 시장을 직접 장악할 수는 없는가?
물론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서 MRO 사업을 직접 수행한다. 하지만 특정 부품이나 기술에 특화된 별도의 MRO 전문 기업이 비용 효율성과 기술적 깊이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아, 상호 보완적 경쟁 관계를 형성한다.
MRO 산업에 투자할 때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국방 예산의 급격한 삭감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예산이 줄어들면 신규 무기 도입 연기와 더불어 기존 장비의 정비 주기 연장이나 성능 개량 사업이 후순위로 밀려나 MRO 기업의 매출에 직접적 타격을 준다.
무인기(드론)의 확산은 MRO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기회 요인이다. 드론은 기체뿐 아니라 탑재되는 고가의 전자광학/적외선(EO/IR) 장비, 센서, 데이터링크 등 정비 수요가 막대해 새로운 고부가가치 MRO 시장을 창출한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정부가 MRO 기업에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하는가?
전략물자 관리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전시 필수 정비 품목을 생산하거나 독점적 기술을 보유한 MRO 기업을 방위사업청 등에서 ‘방위산업체’로 지정하고 보호·육성하는 것은 국가 생존성과 직결되는 문제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