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지나갈 것들로 인생을 채우지 마라 | 마음 비우기

며칠 전 책상 위를 정리하다가, 언제 적어두었는지도 모를 메모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는 꽤 중요하다고 생각해 적어두었을 텐데, 지금 보니 이걸 왜 그렇게 잊지 않으려 했었었는지조차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한때는 마음을 꽉 채웠던 걱정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힘도 없는 문장처럼 남아 있는 순간 말이죠.

오늘은 그런 불필요한 마음의 넘침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하는 책, <스쳐지나갈 것들로 인생을 채우지 마라> 리뷰입니다. 지금 붙잡고 있는 생각과 감정 중 무엇을 남겨야 하고, 흘려보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메인으로 소박하게 한 상 차려보려 합니다.


상을 차리게 된 이유

포스팅을 통해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요즘 일상이 부쩍 무겁게 느껴집니다. 하는 일마다 쫓기듯 서둘러야 할 것 같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하죠. 마음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불필요한 생각들로 꽉 차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던 차였습니다.

그러다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굳이 내가 채우려 했던 것들이 그저 스쳐지나갈 것들이라면, 내가 이토록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 책을 펼쳤습니다.


이 상의 특별함

저자는 부모님 댁 창고에서 20여 년 전 자신의 일기를 발견합니다. 그 시절에는 분명 크게 흔들렸던 감정들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죠.

책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강렬했던 감정조차 결국은 지나간다. 그렇다면 지금 붙잡고 있는 감정도, 흘려보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저자는 건강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자존감, 인간관계, 일, 일상, 그리고 앞으로의 삶까지 다섯 갈래로 나누어 ‘마음 비우기’를 풀어냅니다.

단순히 “비워봐”라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에 붙잡히는지, 뇌가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까지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그 자동적인 반응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선택지를 제시하죠.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도록 풀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반응 한 스푼

교보문고★ 10.0리뷰 (51)
예스24★ 9.7리뷰 (52)
알라딘★ 9.8리뷰 (9)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같은 자리가 아니다.

책에는 김경일 교수의 풍선 이야기가 나옵니다. 놀이공원에서 사 준 풍선을 잃어버려도 아이는 금세 다시 뛰어놀았다고 합니다. 반면 탈 벤 샤하르 교수의 아들은 늘 가지고 다니던 작은 장난감을 떨어뜨리고 한참을 울었다고 하죠. 이 두 장면이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원하는 것은 손에 넣는 순간 끝나지만, 좋아하는 것은 손에 넣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저자는 우리가 행복이라고 느끼는 감각이 사실 좋아하는 것 쪽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문득, 옷장 속 거의 입지 않은 옷과 한 번 쓰고 그대로 둔 물건들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한 걸음만 떼면 어떻게든 움직인다.

파킨슨병 환자들이 보행 동결을 겪을 때 레이저 지팡이를 사용하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멀리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발 앞에 표시된 빛 한 줄에 시선을 두면 다리가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죠.

같은 맥락에서 앤 라모트의 책 일화도 인용됩니다. 보고서를 못 쓰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 하라고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큰 목표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할 때 우리는 흔히 의지가 부족하다고 자신을 탓합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문제가 의지가 아니라 시야의 폭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시선을 발 앞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은 내디딜 수 있다는 것이죠.

가까이 둔 것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

후반부에는 페스팅거의 기숙사 실험이 소개됩니다. 신입생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 세 사람”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42%가 자기 방과 가까운 곳에 사는 학생들을 꼽았다고 합니다.

종교나 성향이 달라도 ‘자주 마주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친구가 된 셈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출발해 공간 점검, 옷장 점검, 생활 습관 점검, 태도 점검, 인간관계 점검까지 다섯 가지 점검 방법을 제시합니다.

점검 항목은 아주 사소합니다. 책상 옆 과자 한 봉지부터 옮겨 보라는 식.

마음을 비운다는 말이 결국, 가까이 두는 사람과 물건과 행동을 골라내는 일이라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이 외에도 비행기가 강풍에 흔들리는 동안 ‘무탈이 행복’이라는 말을 몸으로 느꼈다는 일화나, 팀 어반의 인생 달력으로 남은 일요일의 수를 세어보는 대목 등 곱씹을 만한 장면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내 삶에 덜어두기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제 생활 방식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동안 최신 기기나 유행하는 물건들을 보며 느꼈던 갈증이, 사실은 그것을 가진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서 생긴 허기 같은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거든요.

이제는 무언가를 선택하기 전에 한 번 더 묻게 될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잠깐 원하는 것에 불과한 건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불필요하게 채우려던 것들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곁들여 낸 대화 한 접시

“여보, 이 책 읽다 보니까 우리 집에 안 쓰는 물건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맞긴 해.”

“실습 나가면 뭐해?”

“환자 관찰하는 건데, 한꺼번에 다 보려고 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여.”

“하나씩 보라는 거네.”

“응. 한 사람씩, 한 장면씩.”

“마음도 똑같네.”

“맞아. 한 번에 다 정리하려고 하면 시작도 못 해.”

“오늘은 서랍 한 칸만 비워볼까.”

“그래 좋아.”


한 상 정리

<스쳐지나갈 것들로 인생을 채우지 마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덜어내기’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지나간 감정의 옅어짐으로 시작해, 호흡과 통제감, 그리고 작은 한 걸음으로 이어지죠.

우리는 늘 더 채우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붙잡고 있는 것 중, 정말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마음 비우기라는 말은 흔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구체적인 일상의 선택으로 끌어내립니다.

책상 위 물건 하나, 자주 보는 사람 한 명, 아침에 처음 마주하는 말 한마디. 그 작은 것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눈에 보이는 것 하나는 덜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