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둔 화분의 가느다란 가지가 바람에 크게 흔들리는 걸 한참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로워 보여 손을 뻗어 붙잡아주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가지는 저렇게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꺾이지 않고 바람의 무게를 흘려보내는 건 아닐까. 우리는 종종 아무런 동요 없이 단단하게 서 있는 것만이 강함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건, 끝까지 버티는 힘보다 흔들릴 수 있는 여유와 유연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완강하게 버티는 삶 대신 흔들림의 가치를 긍정하며, 내면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책, <흔들려야 무너지지 않는다> 리뷰입니다. 억지로 괜찮아지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왜 마음의 평온으로 이어지는지, 그 흐름을 메인으로 소박하게 한 상 차려보려 합니다.
상을 차리게 된 이유
성실하게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에 매여, 정작 제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오래 외면해왔습니다.
힘들어도 괜찮은 척, 버텨야 하는 척, 단단한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다 보니 어느 순간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쉽게 금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강하게 버티는 것만이 답이라고 믿어온 제 방식이 정말 맞는 걸까 싶었습니다. 그 찜찜한 의문을 붙들고 있던 때,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상의 특별함
책의 저자 가토 다이조는 하버드 연구원 출신으로, 일본에서 오랫동안 라디오 인생 상담을 진행해온 심리학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은 막연한 위로나 다짐이 아닌, 지금 느끼는 감정이 왜 생겨나는지를 어린 시절의 경험, 편도체에 새겨진 감정 기억, 불안정 애착 같은 심리 개념으로 풀어갑니다.
특히 우울함이나 불안을 그저 지금 가지고 있는 현재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자아실현을 이루지 못한 지난 시간의 계산서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어요. 억지로 털어내려 하기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일이 왜 회복의 시작이 되는지 설득력 있다 느껴졌습니다.
반응 한 스푼
| 교보문고 | ★ 10.0 | 리뷰 (11) |
| 예스24 | ★ 9.9 | 리뷰 (20) |
| 알라딘 | ★ 9.9 | 리뷰 (15) |
괴로움의 뿌리는 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있다
지금 화가 나는 이유가 사실 오늘의 일 때문이 아닐 수 있어요. 책에서는 현재 느끼는 불쾌함이 단지 지금 상황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무의식 속에서 재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전이’라고 하는데요, 과거의 감정을 현재의 관계나 상황에 덧입히는 현상이에요.
엄마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다음 날,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뾰로통한 이유가 바로 어제의 어긋난 약속 때문인 것처럼 말이죠.
이른바 ‘병렬 왜곡’은 어른의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사소한 한마디에 필요 이상으로 상처받는다면, 그건 그 말보다 오래전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반응하는 거라는 시각이 날카로웠어요.
기억 속에 얼어붙은 공포
책에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기억 속에 얼어붙은 공포’입니다. 유년기의 두려운 경험은 뇌의 편도체에 감정적 기억으로 새겨지고,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자동으로 반응한다는 거예요.
불안정 애착도 같은 구조입니다. 어린 시절 애착 대상과의 관계가 불안정했던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에서 같은 불안 패턴을 반복해요.
상대방의 기분을 끊임없이 살피거나, 사소한 반응에 쉽게 흔들리거나, 누군가와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들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이런 패턴은 성격이 아니라, 해결되지 못한 심리적 과제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합니다.
불행을 받아들이는 것이 강인함의 출발이다
책에는 시각장애를 얻게 된 뒤 한동안 복지센터 가기를 완강히 거부했던 한 대학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복지센터를 찾아간 이후, 세상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말하는 대목이에요.
친구도 생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죠. 이 장면을 통해 가토 다이조는 불행을 받아들이는 것이 체념이 아니라 자기 삶의 원점을 마주하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완벽하게 버텨야 한다는 기준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번아웃 증후군, 학습된 무기력, 공생적 성향이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요. 특히 번아웃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왔기 때문에 생긴다는 시선이 참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내 삶에 덜어두기
두려움의 90퍼센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실제로는 아무 위협이 없는데도 뇌가 위험하다고 해석하는 건, 과거에 학습된 두려움이 여전히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제가 긴장하는 순간들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두려운 건지, 아니면 오래전 무서웠던 기억이 다시 반응하는 건지 한 번 더 묻게 되더라고요.
곁들여 낸 대화 한 접시
”여보, 이 책 읽다 보니 불안정 애착 얘기가 나오던데. 간호 쪽에서도 이런 거 다뤄?”
”어, 정신간호 때 나왔어. 볼비 이론이랑 같이.”
”그럼 환자 볼 때도 그런 시각으로 보게 돼?”
”응, 증상만 보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 있잖아.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같이 봐야 하는 거고.”
”이 책이랑 결이 비슷하네. 지금 힘든 게 과거랑 이어져 있다는 거.”
”근데 이론으로 아는 거랑 실제로 사람 앞에서 보이는 건 또 다르더라.”
한 상 정리
가토 다이조의 《흔들려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완벽하게 강한 사람이 되라고 몰아붙이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말해주었어요. 우리가 겪는 심리적 고통이 현재의 사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고통 뒤에는 오래된 감정 기억과 억눌린 두려움이 남아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약함을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나의 일부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진짜 강인함은 흔들리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데 있다는 말.
저도 이제는 마음의 점수를 매기듯 스스로를 평가하기보다, 오늘의 흔들림을 오늘의 상태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려 합니다. 버티는 삶만이 정답은 아니니까요. 조금 흔들리더라도, 그 흔들림 덕분에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오래 붙들게 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