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몸이 무거운 아침이 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가 마치 얼른 일어나라 다그치는 소리처럼 들려 이불 속으로 자꾸만 몸을 웅크리게 되는 아침이 있죠. 그리고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 한구석은 비어 있는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묵직함이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괜찮다고 넘기기엔 조금 버겁고, 그렇다고 어디가 어떻게 힘든지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려운 그런 날들..
오늘은 그렇게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책,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리뷰입니다. 불안과 미루기, 관계의 상처와 우울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흔들리는 마음의 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메인으로 소박하게 한 상 차려보려 합니다.
상을 차리게 된 이유
한동안 이유 없이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무기력이나 우울, 마음 건강과 관련된 책들을 몇 권이나 꺼내 읽고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하기도 했지요.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억지로 뭔가를 해보려 하면 오히려 더 지치는 느낌이 계속 남아 있던 때였습니다. 이게 뭐지? 왜 막연히 불안한데 아무것도 하기 싫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기를 반복하던 때,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꼭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은 건 아니야?라고..
이 상의 특별함
저자인 이두형 작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지만, 책은 처음부터 전문가의 시선으로 적지 않습니다. 일전에 포스팅했던 저자의 다른 책,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과도 결이 비슷했어요.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만원 지하철과 격무 앞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평범한 한 사람이기도 했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시대를 버티는 사람의 자리에서 마음을 이해하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불안이 왜 생기는지, 미루기의 뒤에 어떤 심리가 숨어 있는지, 누군가를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또 쉽게 실망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지, 우울한 사람에게는 왜 섣부른 조언보다 곁에 있어주는 일이 먼저인지까지. 읽는 내내 이상하게 덜 외로워지는 책이었습니다.
반응 한 스푼
| 교보문고 | ★ 9.2 | 리뷰 (25) |
| 예스24 | ★ 9.5 | 리뷰 (64) |
| 알라딘 | ★ 9.5 | 리뷰 (29) |
불안은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몸이 울리는 생존의 알람일 수 있습니다.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내 성격의 문제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책은 불안을 위협에 반응하는 교감신경의 작동으로 설명합니다. 원시의 인간에게는 실제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반응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시험, 발표, 면접, 인간관계 같은 상황에서도 과하게 켜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불안을 무조건 몰아내려는 태도보다, 내가 왜 이렇게 긴장하는지 그 정체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숨이 가빠질수록 천천히 호흡하고, 몸이 굳을수록 조금씩 이완하면서 스스로에게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연습. 이 부분을 읽으며 불안을 이겨야 한다기보다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 남았습니다.
미루기는 게으름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교묘한 저항일 수 있습니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루기를 ‘수동 공격성’과 연결해 설명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자꾸 나중으로 미루는 행동이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버거운 책임과 압박 앞에서 삶에 소심하게 저항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해석이 흥미로웠어요.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 도망칠 수는 없지만 마음은 이미 지쳐 있는 상태. 그 사이에서 사람은 대놓고 삶을 거부하지는 못한 채, 미루기와 핑계, 작은 지연으로 버텨보려 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미뤄진 일은 결국 내 신뢰를 깎고, 내 역할과 기회를 조금씩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자는 ‘엎드리기’처럼 더 미룰 수 없는 가장 작은 시작을 권합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행복은 없어서 못 느끼는 게 아니라, 보지 못해서 놓칠 때가 많습니다.
책에 나오는 ‘고릴라’ 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 대니얼 사이먼스의 실험을 통해, 사람은 어떤 과제에 집중하느라 눈앞을 지나가는 고릴라조차 놓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의 삶에 겹쳐 보여주죠.
우리는 늘 해결해야 할 문제, 성과, 불안, 걱정거리 같은 더 큰 자극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그러는 사이 내 몸에 꼭 맞는 셔츠 한 장의 편안함, 오래 남는 문장 하나, 잠깐 스쳐가는 바람 같은 조용한 기쁨은 잘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립니다. 행복이 어떤 성과 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 곳곳에 있는데도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어 놓치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또 이 책은 누군가를 지나치게 이상화했다가 작은 실망에도 크게 무너지는 마음, 우울을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삶의 동기를 잃어버린 상태로 보는 시선까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마음의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게 됩니다. 좋고 나쁨으로 자르기보다, 왜 이런 마음이 생겼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책이었어요.
내 삶에 덜어두기
책을 읽고 남은 것은 마음을 억지로 비워내려 하기보다, 그 작동 방식을 먼저 이해해 보라는 태도였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얼른 지워야 할 것처럼 굴 때가 많았습니다. 불안하면 안 되는 것 같고, 무기력하면 더 움직여야 할 것 같고, 우울하면 빨리 벗어나야만 할 것 같았죠.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먼저 물어보게 됩니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긴장하는지, 무엇이 버거워 미루고 있는지, 왜 자꾸 누군가의 반응에 흔들리는지. 그렇게 마음의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일 자체가 이미 회복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하루를 평가하기보다, 그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불안을 몰아내는 것보다 알아차리는 쪽으로, 나를 바꾸려 드는 것보다 이해하는 쪽으로 바꿔보려구요.
곁들여 낸 대화 한 접시
“여보, 오늘 정신간호에서 불안한 대상자 얘기 나왔는데 이 책이랑 좀 닿더라.”
“어떤 점이?”
“불안한 사람한테 자꾸 이유부터 캐묻거나 빨리 진정하라고 하면 더 힘들 수 있대.”
“맞아. 이 책도 불안을 없애야 할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며”
“우울한 사람한테도 비슷.”
“응. 판단하거나 해결하려 들기보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게 먼저라는 말이 남았어.”
“쉬워 보여도 제일 어려운 거.”
“그러게. 말해주는 것보다 같이 버텨주는 쪽이 더 어려운 게 맞는 거 같아.”
한 상 정리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는 완전히 달라지는 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지금 이 마음이 왜 이렇게 버거운지, 왜 자꾸 불안하고 미루고 흔들리는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도와주는 책에 가까웠어요.
불안을 교감신경의 작동으로 설명하는 대목에서 시작해, 미루기의 뒤에 숨은 저항의 마음, 관계 안에서의 이상화와 실망, 우울을 삶의 동기를 잃은 상태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행복이란 이루어낸 성과만이 아니라 놓치고 있던 소소함 속에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마음을 몰아세우기보다 먼저 이해해 보자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저 조금 괜찮아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어떤 결심이나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음이 힘든 날 곁에 두고 조금씩 읽기 좋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어주기 충분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