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꼭 편하지만은 않은 날이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누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오래 남아 자꾸 곱씹게 되는 날이요. 그럴 때면 지금 내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가 정말 오늘 하루의 일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정신과 진료실에서 마주친 여러 사례를 통해, 자존감이 낮을 때 사람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 <우울하면 좀 어때> 리뷰입니다. 분리불안이 어른의 외로움과 관계 패턴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낮은 자존감은 왜 남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게 하는지, 그리고 설명되지 않던 마음의 반응들을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는지를 메인으로 소박하게 한 상 차려보려 합니다
상을 차리게 된 이유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이 오래 남는 날이 있습니다. 지금 들은 말보다도, 그 말을 받아들이는 제 안의 방식이 더 문제인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었어요. 왜 어떤 날은 괜찮다가도, 어떤 날은 유난히 쉽게 작아지는지 저도 잘 설명이 되지 않았거든요.
앞서 마음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도 늘 비슷한 지점에서 걸렸습니다. 이해는 되는데, 마음은 또 제멋대로 반응하더라고요.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고, 그 밑바닥에 있는 오래된 불안이 뭔지 조금은 알고 싶어서 책을 펼쳤습니다
이 상의 특별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설명부터 떠올리게 되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결이 다릅니다. 분리불안, 자존감, 페르소나, 해리 같은 개념을 앞세워 설명하기보다, 실제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죠.
그래서 읽는 내내 이론서를 읽는 느낌보다, 누군가의 마음이 왜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히 따라가게 되었어요. 감정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행동보다 그 밑에 깔린 상처와 불안을 먼저 보게 만든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 역시 우울한 날이 있다고 숨기지 않는 태도였어요. 진단하는 사람의 위치에만 서 있기보다, 결국 같은 삶을 건너는 사람으로서 쓰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게 했습니다.
반응 한 스푼
| 교보문고 | ★ 9.5 | 리뷰 (9) |
| 예스24 | ★ 9.0 | 리뷰 (25) |
| 알라딘 | ★ 8.8 | 리뷰 (16) |
자존심이 세 보이는 사람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르다.
책 초반의 ‘자존심이 높은 남자’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남의 평가에 유독 예민하고, 조금만 건드려도 크게 화를 내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자존심이 세다고 말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책은 그 반응의 밑바닥에 낮은 자존감이 있을 수 있다고 짚습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실제로는 쉽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거죠.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말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칭찬과 비판 모두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차이를 읽고 나니, 사람의 겉반응만 보고 단정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오해인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분리불안은 어린 시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어른의 관계까지 끌고 간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 중 하나는 ’31번째 남자’ 이야기였습니다. 직장을 반복해서 그만두고,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먼저 끊어버리는 패턴을 보이는 인물인데요.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행동할까 싶다가도,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을 끌고 가는 건 현재의 어른이 아니라 여전히 불안에 붙들린 어린아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이 곧 버려질 위험으로 느껴진다면, 친밀함 자체가 공포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떠나기 전에 먼저 떠나고, 상처받기 전에 먼저 끊어내는 방식이 반복되는 겁니다. 관계의 문제가 성격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이 대목에서 알 수 있었네요.
이상한 습관 같았던 것도, 마음이 버티기 위해 만든 방식일 수 있다.
책에는 분리불안 때문에 특정 대상이나 습관에 집착하는 이야기들도 나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든 버릇이나 습관은 불안을 극복하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우리는 습관을 너무 쉽게 좋은 것, 나쁜 것으로만 나누려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반복은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이 아니라, 마음이 불안을 견디기 위해 붙잡고 있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을 읽고 나니 무심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버릇도, 자꾸 익숙한 것만 찾는 태도도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내 삶에 덜어두기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남은 건, 감정을 너무 빨리 평가하지 말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외로움이 오면 약해서 그런가 싶고,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면 왜 이렇게 흔들리나 싶었는데, 그 반응에도 다 나름의 맥락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특히 어떤 습관이나 감정은 지금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진 방식일 수 있다는 말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 안에서 올라오는 반응을 무조건 고치려 하기보다, 왜 그런지 한 번 더 들여다보려 합니다. 이름 붙이기 전에 먼저 이해해 보려고요.
곁들여 낸 대화 한 접시
“그 책, 정신과 관련된 책이야?”
“응. 근데 어렵게 설명하는 책은 아니고, 실제 사례가 계속 나와.”
“그럼 읽기는 좀 쉽겠다.”
“응. 자존감 낮은 이유를 막 추상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흔들리는지 사람 이야기로 보여주더라.”
“분리불안 같은 것도 나와?”
“많이 나와. 어릴 때의 불안이 어른 돼서 관계 방식으로 이어지는 얘기들이 계속 나와.”
“그런 건 좀 궁금하다. 그냥 성격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도 그랬는데, 읽고 나니까 함부로 단정하면 안 되겠더라.”
한 상 정리
<우울하면 좀 어때>는 자존감이 낮다고 느껴질 때, 자꾸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때, 혹은 내 감정과 습관이 왜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지 궁금한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분리불안, 낮은 자존감, 관계의 집착과 회피, 해리와 꿈같은 주제들이 모두 실제 사례를 통해 풀려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히고, 무엇보다 사람 마음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상해 보이던 반응에도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었어요.
읽고 나면 타인의 행동뿐 아니라 내 반응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왜 이렇게 예민할까, 왜 이렇게 공허할까 자책하기보다, 그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엔 제목 그대로 이런 마음이 남습니다. 까짓것, 우울한 날이 좀 있으면 어떠냐고. 조금 더 이해하면서 지나가면 되는 거라고요.